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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 내일신문 - 2011년 10월 28일
작성자 : 파주재래닭 등록일자 : 2015-11-10 16:05:26 조회 : 2312



[내일신문]

 토종닭이란 말은 음식점(?)에서 많이 들었지만 ‘재래닭’이란 단어, 낯설다. 하지만 재래닭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닭들과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색과 자태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닭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 문화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재래닭은 우리 토속 유전자까지 말살시키려는 일제와,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빨리 자라고 더 많이 자라는 외래종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재래닭의 고유품종 보존을 위해 1990년부터 30여 년 한길을 걸어온 파주 현인농원 홍승갑 대표. 부인 김두회 씨와 함께 큰 농가소득도 되지 않는 토종닭 재래종의 수집, 복원, 유지에 거의 평생을 바쳐온 홍 대표는 재래닭이 지닌 20여 가지 색상 중 14종의 색상 복원에 성공했다.

우연히 기르게 된 우리 재래닭과의 인연이 복원, 보존의 길로 들어서게 해

 파주읍 향양리, 대로에서 안내 표지판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 길 끝에 현인농원이 있다.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면 방금 달리던 대로가 보일 정도로 가깝지만, 재래닭들이 살고 있는 현인농원은 또 다른 별천지다. ‘농촌진흥청 지정농원’이란 팻말이 아니라면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 계사에서 흔히 나는 계분 냄새도 전혀 없다.

 “우리 농원의 재래닭은 사육방법도 재래식을 따르고 있어요. 뒷산 낙엽에서 배양한 균사체에 미강이나 농가 부산물을 함께 발효해 사료로 만들어 먹입니다. 이것이 천연 항생제 역할을 해서 따로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건강하게 자랍니다. 사료에 맥반석 활성탄 키토산 등을 섞어 만들어 먹이고요. 농원 초기 30년 전부터 그랬으니 그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죠. 제가 아마 유기농, 친환경농법의 원조일겁니다.(웃음) 그 덕에 우리 농원은 냄새 안 나는 깨끗한 계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의 농원 자리에서 다른 일을 했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터.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재래닭 보존을 위해 오랜 세월 비경제성을 감내하며 재래닭 보존에 힘써온 계가가 궁금했다. 파주가 고향이지만 생활터전은 서울이었던 홍 대표의 일가는 일제 강점기 때 파주 교하에 정착하게 됐단다. 홍 대표는 군 제대 후 서울 전농동 부근에서 양돈 양계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러다 우연히 관상용 우리 닭을 얻게 됐다. 재래닭 특유의 날렵하고 날쌘 그 닭은 성깔도 대단해 이웃과 시비를 몇 번 겪게 되면서 결국 잡아먹히는 신세가 됐다. “그땐 그런 닭을 구하려면 어디서 또 구해지겠거니 했다”는 홍 대표는 그 후 쉽사리 그런 모양새의 재래닭을 만날 수 없었다. “그 때 우리 귀한 재래닭 한 마리가 아깝게 사라지게 된 걸 후회했지요” 그 후 재래닭이 있다는 곳을 수소문해가며 수집하기 시작했다.

“토종닭과 재래닭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종이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7대가 지나면 토종닭으로 칩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식용으로 사용하는 토종닭이란 종은 그렇게 생긴 것이고, 엄연히 우리 고유의 재래닭과는 차이가 있지요.”


 홍 대표가 지금까지 복원한 재래닭은 20여 종 중 14종이다. 흑계, 황갈색계, 적갈색계, 은계, 백계 등으로 나뉘었으나, 한 세대를 내려가면서 새로운 계통의 종이 자꾸 생겨나 번호로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생산한 달걀에는 연필로 숫자가 적혀있다. 번호로 계사를 구분하는 것은 근친교배를 피해 종의 품질을 높이고 고유의 성질은 보존하려는 까닭이다. 

한국재래닭보존연구회 창립부터 친환경농산물인증까지, 아직도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

 30여 년 재래닭 보존을 위해 애쓴 것은 홍 대표만이 아니다. 아내 김두회 씨도 공직생활 은퇴 후 본격적으로 나섰다. 생산은 홍 대표가, 인터넷 홍보와 교육, 판매부분은 아내 김 씨가 맡고 있다. 재래닭 복원에 뜻을 함께 하고 한 길을 걸어온 부부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보람도 많았다고 회고한다. 1983년 복원성과를 갖고 만났던 국립축산과학원 정선부 박사와의 인연으로 시작한 한국재래닭보존회 창립, 축산원 본소 시험장에 종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데 힘을 보탰던 일, 전국 6개 농장에서 참여한 맛닭(한닭)의 개량 사업 참여, 또 최근 재래닭의 관상화라는 새로운 인증시스템까지 부부의 복원 보존사업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친환경은 이미 30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는데 그 인증시스템이란 것이 참~~어렵대요” 실제 환경보다는 행정상의 절차가 참으로 어렵더라는 홍 대표, 드디어 각고의 노력 끝에 2009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을 때 가장 기뻤다고 토로한다. “농원을 운영하면서 고비야 수없이 많았지요. 가장 어려웠던 일은 2008년 조류독감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때, 우리 농장도 매몰 위기에 처했었어요. 그 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남은 닭을 다 폐기하려고 했어요” 지금 창고 안에 보존된 20마리의 박제된 재래닭은 그때 “혼자라도 곁에 두고 보자”해서 만든 것. 다행히 조류독감은 비껴갔고 그 후 한 차례도 현인농원은 가름류 관련 유행성 증상에 노출된 적이 없다.

스무 종의 재래닭 복원을 마치는 것, 그리고 닭 박물관을 남기는 것이 꿈

 현인농원의 주 수익원은 재래닭 과 유정란 판매다. 개량된 닭은 병아리에서 3개월이면 성계가 되는데 비해 재래닭은 4개월에서 5개월이 걸린다. 산란용 닭은 매일 알을 낳아 연간 300개 이상 생산이 가능한 반면, 재래닭은 연간 생산량이 100~150개에 머무르며 그것도 번식기(3월~6월)에만 치우친다. 770여 평, 4동의 계사를 혼자 관리하고 여기서 낳은 유정란을 한 알 한 알 정성들여 닦고 번호를 매겨 포장상자에 담다 보면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바쁘다.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을 상대하고, 재래닭 보존에 뜻이 있어 사육법과 유정란을 보내달라는 주문에 응대하는 일도 모두 홍 대표의 몫이다. “젊을 땐 복원하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는데, 이젠 힘이 부쳐요. 나이가 일흔이 넘으니 아직 복원해야 할 종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마음만 바쁘고, 이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고” 그렇게 힘들 때마다 농원 초입에 세운 표지판에 쓴 글을 읽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는 홍승갑 대표. “본 농원은 재래닭 사육농장으로서, 옛 조상들이 기르던 우리 고유의 재래닭을 복원 유지, 보존 연구하며 이를 관상화하여 일반인들이 우리 재래토종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보존 연구하는 농원입니다” 이는 이곳을 찾는 이를 위한 안내판이지만, 자신에게 다짐을 일깨워주는 채찍이기도 하단다. 그에게 남은 작은 꿈은 남은 종의 복원과 함께 닭박물관을 남기는 것, 이를 위해 농원 아래 빈 집에 민속품과 닭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돌아오는 길, 친정아버지가 딸에게 싸주듯 정성스레 건네준 30알의 유정란. 집에 와 풀어보니 크기가 제각각 일반란보다 작은 달걀들이 종이박스 안에서 얼굴을 내민다. 홍 대표가 지나온 30여 년의 세월 닮은 달걀 한 알, 한 알. 선뜻 먹기 힘들 것 같다. 

http://pajukoko.com(유정란 문의 031-952-8989)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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